수능 국어 시험은 동네 북
수능 국어 시험은 동네 북입니다. 수능이 끝나거나 수능이 사회적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때면 누구나 나서서 한마디씩 수능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각각 내뱉는 그 ‘한마디’는 무척 닮아있습니다.
-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한 시험은 비교육적이다. 치열한 경쟁에 학생들을 내몰지 말자. 불쌍하다.
-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구닥다리 5지 선다 문제를 지금 풀어야 하나?
- 명문대 나온 나조차도 못푼다.
대충 이런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학력고사 시절에도 때만되면 나오는 레퍼토리였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논객들의 학생 사랑과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정말 획일적이고 비교육적인 수능 시험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개탄하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근데 학생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지 말자는 주장, 이거 공염불입니다. 그런 주장을 신문지상에 늘어놓는 바로 그 논객 역시도 집에 가면 자식에게 시험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칠 겁니다. 수월성 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시달리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분들의 자제들이 어떤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어떻게 하다보니 식민지 시절의 일상을 조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의 1920-30년대 식민지 시절에도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10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있어왔지요. 그 오랜 역사를 알면 얼마나 그 치열한 경쟁을 없애자는 말이 무모하고 덧없는 이야기인지 알게 됩니다. 가급적이면 학생들의 저마다 가진 재능을 꽃피우게 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 치열한 입시 경쟁을 일거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으니 누군가가 하겠다고 한다면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어디든 치열한 경쟁은 있다
치열한 경쟁이라는 것이 단지 시험 제도 하나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하게 되면 거기에는 예외없이 경쟁이라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음악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무슨 순위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여봐도 빌보드 차트, 가요 톱 텐, 벅스 차트, 멜론 차트 등등 차트는 계속 나옵니다. 월드컵은 괜히 있을까요? 올림픽은요? 사람들은 재계 순위도 끊임없이 매깁니다. 그냥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만듭니다. 남보다 더 우월하고 싶은 우월욕망으로 들끓는게 사람입니다.
게다가 세상에 ‘좋은 것’은 항상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고요. 그런 경우 당연히 경쟁이 발생합니다. 임영웅 씨나 BTS의 콘서트표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하던가요. 그런데 학생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내모는 입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요? 글쎄요. 바뀐다고 경쟁이 없어졌던 때가 있던가요? 어쩌면 가장 좋은 입시제도는 차라리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뀐 규칙의 수혜자가 누굴까?
전 항상 이런 당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편입니다. 국제 양궁 협회는 수시로 경기 룰을 바꿉니다. 바로 대한민국이 너무 메달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룰이나 제도가 바뀌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을 허물고 전혀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경쟁을 없애자는 주장을 하려면 자기 자식부터 그 경쟁에서 빼내 행복하게 키워낸 사람만이 그와 같은 당위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정성이 있지요. 그렇지 않다면 공적인 언론 매체에, 혹은 정책으로 저런 주장을 하거나 관철해서는 안됩니다. 공연히 순진한 학생과 학부모에게 경쟁이 정말 없어질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이득이 편중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쟁은 없어지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경쟁을 해 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경쟁을 멈춥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때 사람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을 그만 둘 것입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비싼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입시 경쟁을 그만 둘 것입니다. 거꾸로 만약 어쨌거나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삶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5지 선다 객관식 시험의 대안은 있는가?
다음, 21세기에 5지 선다가 왠 말이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대안이 있냐고요. 지금 교육부와 평가원에서도 서술형 시험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채점이지요. 컴퓨터로 채점을 하기에는 아직 기술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고 사람이 일일이 채점을 하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공정성을 기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평가원에서 발행되는 뉴스레터나 연구논문들을 보면 평가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서술형 시험을 시행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좋다는 것을 몰라서 시행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술 면접이나 입학사정관을 통한 방법의 부작용은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있는 대로이고요. 수시를 통해 좋은 성과를 얻은 학생들이나 그 학생들의 부모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지만 결코 흠결없는 방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꽤 문제의 여지가 많은 시험이지요. 게다가 솔직히 고등학교 내신 국어 시험 문제를 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정말 후진적인 시험이라는 것이 바로 느껴집니다. 학생들의 등급 변별을 위해 정말 기상천외하게 문제를 출제하더군요. 문제도 엄청 많고 시험지도 정말 빡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수능 국어 시험보다 먼저 없어져야 할 게 내신 국어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다른 과목은 어떤지 몰라서요.)
어떤 사안에 대한 비판에 힘이 실릴려면 대안이 명확해야 합니다. 대안이 부실하면 그냥 해보는 비판에 불과하지요. 누구나 현실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그저 비판만 한다면 그 비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30년 전부터, 아니 100년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아무나 깐다!
그 정도에서 그쳐주면 좋겠는데 항상 언론이나 논객들은 한층 더 오버합니다. 그들은 꼭 수능의 여러 과목 중에서 국어 과목을 콕 찝어 풀어보고는 자랑처럼 말합니다.
“내가 서울대 졸업했는데, 내가 봐도 못 풀겠다. 이걸 학생들이 어떻게 80분 동안 풀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왜 사람들은 수능이 끝나면 수학이나 영어, 과탐, 사탐도 아니고 꼭 국어 과목만 풀어보는 것일까요?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시험이나 수학 시험은 국어 시험만큼 쉽게 접근이 안됩니다. 그동안 영어 공부나 수학 공부는 따로 안했으니 다 까먹었을 테니까요. 유독 국어 과목 만큼은 아무런 훈련을 안하고도 나름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읽을 수는 있잖아요. 시간을 많이 들이면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시험입니다. 그래서 방송사나 신문사의 데스크는 명문대 출신 신입 기자들에게 수능이 끝나면 수능 국어 시험을 한번 풀어보게 합니다. 기사들의 어조는 대체로 동일합니다. 앞에 이야기 했던 대로 명문대 출신의 기자가 풀어봤는데 너무 어렵다더라, 입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 어떻게 시험을 잘 보길 희망하나?
이상하지요? 어떻게 고등학생들이 길게는 12년, 아무리 짧아도 1~2년은 죽기 살기로 준비한 대입 수능을 아무런 준비 없이 곧바로 풀어보고도 잘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본인이 천재이기라도 한 걸까요? 이 무슨 오만한 발상인가요? 이상합니다. 누구나 패스한다는 운전면허 필기 시험도 완전히 백지 상태로 가서 보면 꽤 많은 사람이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모든 시험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준비를 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기자들의 경우, 자신들은 그냥 신문 읽듯이 시험지를 읽으면 답이 보이는 시험을 상상한 것일까요? 평가원에서 그런 시험을 내면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 시험은 학생들을 변별할 변별력이 없어 입시판이 아수라장, 로또판이 될 테니까요. 인정합시다. 아무 준비 안한 기자나 논객보다는 웬만한 1-2등급 수험생이 훨씬 문해력이 높은 상태입니다.(조만간 세계 각국이 어떤 독해력을 바라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읽기 교육 정책을 펴고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의 수능 국어 시험도 그런 세계적인 추세에 발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작정 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 어렵게 내는 것 같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수능 국어 시험의 경우, 80분 내에 풀지 않고 시간을 충분히 줄 경우에는 평상시 책을 많이 읽고 문해력을 잘 키운 성인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풀어 낼 수 있습니다. 문제 자체가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는 방식이니까요. 엄청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읽어낼 수 있는 지문과 풀 수 있는 문항이 아닙니다. 고교 졸업 수준의 문해력이 있으면 풀 수 있는 시험입니다. 기자들은 대학시절에 책을 많이 읽고 취업 준비할 때 상식도 많이 쌓은 데다 사회 경험도 많아서 고등학생보다도 배경지식은 훨씬 풍부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명문대 나온 내가 몇 시간을 끙끙댔지만 못풀었다’고 한다면 그건 문제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푼 사람이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엄청나게 과장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문해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교육을 받으면 킬러문제가 풀릴까?
‘명문대 나온 나도 못푼다’라고 진단한 사람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그렇게 말한 분은 전국적으로 자신은 그동안 책을 별로 안 읽었고 그래서 자신의 문해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만점짜리가 여럿 나옵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풀 수 있게 시험이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개탄’이 ‘개탄’ 수준에서 머물면 좋은데, 쓸데없이 한 ‘개탄’ 때문에 수능 국어 시험이 종종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버리게 됩니다.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로 비약해버리기 때문이지요. 본인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어서 문항을 풀 수 없는 것인데 그걸 문항 출제의 잘못으로 덮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사교육을 받아야 킬러문항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착각입니다. 사교육은 우물가에 학생들을 데려가는 역할만 합니다. 물을 마시고 목을 축이는 건 학생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지요. 어떤 의미에서 사교육은 체육관이나 수영장 같은 시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실력은 그 안에서 학생들이 닦는 역량이고요. 화려하고 시설 좋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더라도 제대로 훈련하지 않았다면 실력은 제자리입니다. 하지만 허름한 수영장에서 훈련해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수능이 끝나고 나서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명문대 나온 나도 못푼다’ 따위의 개탄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문해력을 전국적으로 고해성사하는 해프닝은 이제 그만 하면 좋지 않을까요.
'수능 국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인문 지문을 가장 마지막에 푸는 것이 어떨까? (0) | 2024.09.13 |
---|---|
문해력의 최후 보루_수능 국어를 위한 변명(3) (0) | 2024.04.24 |
수능 국어 공부는 문제 푸는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다_수능 국어를 위한 변명(2) (0) | 2024.02.14 |
사교육이 가장 커버하기 어려운 과목_수능 국어를 위한 변명(1) (0) | 2023.11.14 |
수능적 문해력_수능은 이런 문해력을 요구한다! (1) | 2023.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