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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수능 국어 공부는 문제 푸는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다_수능 국어를 위한 변명(2)

by baewoonam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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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달달 외우게 하는 시험??

 

수능 국어 시험에 대해 잘 모르는 기자나 논객이 비판을 할 때 종종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있습니다. 수능 국어 시험을 종종 ‘지식을 달달 외우게 만드는 시험’이라고 비판하는 경우인데요. 드물지만 생각보다 자주 행해지는 비판입니다. 예전 제 세대는 ‘학력고사’라는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 시험에 대해 종종 행해지던 비판이 ‘교과서나 참고서를 달달 외우게 만드는 시험’이었지요. 실제로 시험의 성격도 수능과는 달리 ‘얼마나 알고 있는 지를 테스트하는 시험’이었기에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고교 교과과정을 모조리 욱여넣어야 했지요. 정말 누가 누가 머릿속에 지식을 많이 집어넣나 경쟁하는 것이었습니다. 3당 5 락, 즉 3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식의 말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지요. 

 

수능은 그런 암기식 교육의 결과를 테스트하는 시험에서 탈피하고자 만들어진 시험입니다. 그 중에서 수능 국어의 문항들은 대체로 ‘글을 정확하게 읽었나’(내용 일치) ‘지문에서 정의하고 그것을 사용하여 설명한 핵심 개념을 이해했나’(세부 정보 파악) ‘지문에 제시된 대상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나’(비교 대조) ‘지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나’(추론) ‘지문에서 설명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나’(응용) ‘지문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나’(비판)를 테스트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문항들을 통해 학생들의 독해’력’과 사고’력’을 테스트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을 ‘지식을 달달 외워서 풀 수’ 있을까요?

 

이게 쓸데없는 지식일까?

 

수능 국어의 비문학 지문은 인문/예술, 사회/문화, 과학/기술 영역에서 우리 실생활에 활용될만하고 가치가 있는 현재 최첨단의 지식에 대해 대학에서 공부하기에 필요한 필수적인 개념과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써집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필수 지식의 개념과 원리를 지문으로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평가원에서 출제하는 수능이나 모평이 그러하니  교육청의 학력고사나 EBS 연계교재, 여러 사설 모의고사 역시 유사한 제재를 바탕으로 씌어지게 되지요. 이와 같은 지문을 계속 읽고 이해하고 문항을 풀다 보면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교양을 아주 깊이 있게는 아니더라도 고등학생 수준에서 알아야 할 지식들은 충분히 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쓸데없는 지식일 수 있을까요? 

 

학력고사 세대나 수능 초기 세대는 주로 인문 분야의 교양이나 문학 쪽으로 편중된 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면 수능 국어의 비문학 영역은 사회/문화/과학/기술 등으로 앎의 영역을 넓혀주는 기능을 합니다. 성인이 되어 살아갈 때 꼭 필요한 법률 지식과 경제 지식을 학습할 수 있고, 대다수의 성인들이 어려워서 접근조차 하지 않는 과학 기술 분야의 지식을 원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마 수능 국어가 없었다면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분야의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과 교양이 시험에서 중시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만약 수능 국어의 비문학 영역이 없었다면 학생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동안 그런 지식을 그렇게 고강도로 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면에서 수능 국어는 적어도 ‘쓸데없는 지식’을 공부하게 만드는 과목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한번 풀어보시라, 요령으로 되는지?

 

혹자는 수능 국어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 아무리 지문에 있는 지식과 정보가 훌륭해도 그것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일부만 뽑아서 빨리빨리 요령껏 읽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 아냐?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수능 국어의 비문학 문항들을 풀어보지 않아서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못믿겠다면 한 번만 풀어보세요. 특히 학력고사 세대는 수능 국어 시험을 비판하려면 한번 풀어보고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옛날 학력고사 국어문제와 생김새는 비슷하지요. 지문이 있고 그에 딸린 문항들이 4-6문항 있는 것은 꽤 익숙합니다. 그런데 문항을 만드는 원리나 출제 기조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래서 학력고사 세대는 수능을 더욱 어려워하지요. 학생들 수준에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시험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풀어냅니다. 가장 잘 하는 친구는 가장 많이 풀어내고 가장 못하는 친구는 가장 적게 풀어낼 뿐입니다. 모든 학생이 다 쉽게 풀 수 있는 시험은 시험이 아니지요. 수능이 그런 시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에게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한 수준만큼 풀어낼 수 있는 시험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런 시험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일선 학교에서 보는 내신 국어 시험이 훨씬 암기과목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 국어 시험은 지문에서 설명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비판, 추론, 적용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건 꼭 비문학 지문뿐만이 아니라 문학 영역, 언어 영역, 화작 영역 모두를 관통하는 원리입니다. 수능 국어 시험도 시험인 만큼 약간의 요령이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요령만으로 수능 국어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면, 아마 그 요령을 파는 국어 강사는 엄청난 대박을 쳤을 것입니다.  

 

수능 국어 공부를 위해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할 수 있지만, 그 공부가 결코 언론이나 사람들이 말하는 헛된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읽은 비문학 영역의 여러 지문들이, 현대소설과 고전소설들이, 학생들에게 지혜가 되고 양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능 국어 공부는 문제 푸는 기계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고, 수능 국어를 위해 공부하는 텍스트는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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