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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사교육이 가장 커버하기 어려운 과목_수능 국어를 위한 변명(1)

by baewoonam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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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입한 사교육비에 비례하지 않는 시험점수

 

‘대학 수학 능력 평가’. 수능이 만들어진 목적이 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수학’은 ‘고급한 산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을 배운다는 뜻이지요.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수능이 입시를 위한 시험으로 사용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선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사교육’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로 인해 강남의 부유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험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교육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또 워낙 대학 입시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다보니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아이들이 문제 푸는 기계로 훈련받게 된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을 뒤바꾸고 자율 주행차가 곧 도로위를 질주하게 될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전근대적인 5지 선다 시험을 치러서야 되겠느냐는 지적도 종종 흘러나옵니다.

 

그런 비판에는 물론 타당성이 있습니다. 서울의 부유층 학생들이 수능 점수가 높다는  통계도 종종 공개가 되고요.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나 sky(서울대, 고대, 연대) 등의 명문대 학생들의 출신지를 조사해보면 역시 마찬가지로 잘사는 지역 학생들이 많다고 하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없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저는 그런 부분을 언급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범위를 좁혀서 수능 국어 과목으로 한정한다면 이 경우에는 사교육비를 많이 들인다고 해서 성적이 쭉쭉 올라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릴게요.  

 

글 읽는 훈련을 오래 받은 아이들이 유리한 시험

 

수능 국어는 초등학교때부터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관리되는 아이들이 정말 어려워하는 과목입니다. 반면에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수학 선행을 하거나 원어민 영어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책을 읽어온 아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수능 국어는 책을 많이 읽어온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험인데, 책을 갑자기 많이 읽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사교육비를 많이 들인다고 해서 성적이 쭉쭉 올라갈 수 없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수능 국어는 ‘글을 읽어내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지요. 쉽게 말해 너 얼마나 알고 있니?를 묻기보다는 너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니?를 묻는 시험이라고 자주 말씀드렸었지요.  ‘지식’이 아닌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에는 누가 유리할까요? 간단합니다. 많이 해본 사람이 유리합니다. 게임을 잘하려면 게임을 많이 해보고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를 많이 해보면 됩니다. 어? 그렇다면 대치동의 학원에서 죽도록 모의고사를 풀어낸 아이들이 유리한 거 아냐?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네요. 절반은 맞습니다. 정말 죽도록 모의고사를 풀어내면 수능 국어가 필요로 하는 글 읽는 수준에 오를 수 있지요. 하지만 정말 ‘죽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수학, 영어를 잘 하도록 관리된 학생들에게 어려운 것이지요. 입시를 위해 ‘잘 읽는 훈련’을 ‘뒤늦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학생들은 수능 국어 시험의 유형이나 특성을 파악하고 문제 푸는 요령을 조금 익히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어휘력과 사고력, 독해력 등등이 잘 훈련되어 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글을 접하는데 거리낌이 없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능 국어의 비문학 지문을 잘 읽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금방 쌓이지 않는 배경지식

 

게다가 수능 국어는 지문을 잘 읽고 이해하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되기는 하지만, 배경 지식이 많으면 문제를 푸는 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즉, 배경 지식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많으면 유리합니다. 그런데 그런 배경 지식은 단번에 확보될 수 없지요. 앞에서 수능 국어 시험은 글을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늘 새로운 지문을 제시한다고 했잖아요? 인문/예술, 사회/문화,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중요도가 높은 개념이나 원리 등을 지문으로 출제하게 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 지문을 읽어내기 위한 배경 지식의 범위 또한 막연하고 넓습니다. 물론 EBS교재와 연계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통해 조금씩조금씩 배경 지식을 넓혀온 학생들을 시험 공부하는 방식으로 배경 지식을 공부해서 따라가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자란 학생들을, ‘뒤늦게’ ‘잘 읽는 훈련’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 보면 천재나 괴물처럼 보인다. 어떻게 그 어려운 글을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읽어낼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대치동 학원가에는 ‘국어 잘 하는 것은 유전이다’, ‘DNA가 국어 성적을 결정한다’, ‘노력으로 국어 점수를 높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설’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지요.  수능 국어의 이런 성격은 사교육 위주로 관리 받은 학생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에게 다른 과목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수능 국어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상당 부분 다른 과목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교육 중심으로 성장한 학생들은 고3 때 국어 공부에 치중하는 반면, 책을 많이 읽고 자란 학생들은 그 시간에 수학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공부하면 수학 점수가 가장 안나오거든요. 많은 학생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능 국어는 사교육이 커버하기 가장 어려운 과목이고 그로 인한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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